새벽의 괴담이야기
- 장나라 - 장나라는 2003년 여름 지방 행사를 위해 심야에 매니저와 함께 국도를 지날 때 귀신을 목격했다. 당시 장나라의 매니저 심상민 씨는 졸음을 쫓으며 운전을 하던 중 자동차 보닛에 처참한 모습으로 매달린 남성을 목격했다. 너무 놀랐지만 잠든 장나라를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뒷자석에 들려온 장나라의 "오빠도 보여?"라는 목소리에 길가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심상민 씨는 차를 세운 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더 무서운 건 장나라도 똑같은 장면을 본 점이라고 전했다. - 신지 - 2집 활동할 때 당시 촬영 때문에 저희가 경기도 송탄에서 밤늦게 촬영이 끝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에서 다시 촬영해야 해서 저희 멤버 3명 그리고 매니저 오..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그러니까 일본 버블 이전까지 한국에는 소위 "현지처"라는 게 있었습니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 첩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화류게 여인들의 최종 티어 취급이었습니다. 매일 붙들려 살 일 없이 일본인 '남편'이 한국에 들어올 때만 말 그대로 현지의 '처'역할을 해주는 것이었죠. 그래서 일본인에 대한 대우가 꽤나 지극정성이었다는데, 88올림픽 지나서 갑자기 일본인에 대한 호응이 갑자기 팍 식어버리는 일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괴담이 유행해서 그랬다는 게 당시 세칭 '보도'였던 아저씨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뭐 좀 잘 나가는 여성이 있었는데 일본인 손님이 와서 돈을 좀 풀더랍니다. 봉이구나 싶어서 지극정성 달라붙어서 같이 뽕도 맞고 술도 먹고 당연히 잠자리까지 같이 했는데 그 인간 취미가..
돌담길에 접어든 저는 그제야 객기를 넘어선 두려움에 온갖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그전까지도 들렸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소리.. 뱀이 내는 소리와 천식 환자의 쇳소리가 섞인듯한 소리가 돌담 너머로 들려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람 소리려니 했던 저는 계속해서 돌담길을 나아갔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상관없이, 파도가 철썩이는 것과 상관없이 들리는 별개의 소리라는 것과 또한 거기에 돌담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까지 더해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두려움에 얼어붙은 저는 그 순간 오싹한 느낌과 함께 돌담길 저편에서 검은 형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헐레벌떡 선장님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 이외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 '마귀굴'이 내는 소리를 밤새 들으..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남성입니다. 약 20여 년 전, 한 이름 모를 섬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고 언젠가 '마귀굴' 혹은 '마구굴' 이라 불리는 존재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더 이상 지체되어선 영영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이 글을 써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 전쯤이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민한 10대였던 저는 방학을 맞아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아버의 말씀에 매우 들떠있었습니다. 아버지는 3살 어린 삼촌과 함께 셋이서 2박 3일간 섬으로 남자들만의 여행을 가자며 그곳에 아는 선장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여행 당일 저희 세 명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한 항구에 도착한 후 (그 항구의 정확한 이름이 기억하지 못..

2013년 3월 19일에 올라온 지식인의 글.. 소름 돋네요..ㄷㄷ 출처: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1505&docId=169365966&qb=64yA7Ya166C57J20IOqwkOyYpeyXkCDqsIftnojripQg6r+I&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
2000년 과천시 존속 살해 사건 1976년 8월 해군사관학교 출신 해병대 장교 아버지와 이화여대 정치외교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굉장히 엄격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자기 바람대로 크지 않는 차남 이은석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유치원생 때부터 시작된 가정폭력은 이은석이 커갈수록 심해져 이은석은 정신병을 앓기 시작한다. 성격이 극도로 폐쇄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하며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해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해 고려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서울대학교에도 못 간 실패한 자식, 멍청한 자식은 없다 나가 죽어라' 라는 폭언을 하였다. 이은석은 군대에서도 기수열외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한 달 후임이 바락바락 그에게 대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소대..
어제 신나게 겜하고 있는데 급 외갓집에서 전화로 명절인데 함 들려서 같이 저녁 먹지 않겠냐 전화가 왔어요 게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보통이면 난 안 가고 집에 있겠다 하겠지만 저희 외할아버지... 언제나 손자, 손녀들을 보면 세종대왕님 3장 이상씩은 손에 쥐여주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그런 분이세요 그리니 안 갈 수 없죠 가서 사촌들 만나 인사하고 횟집에 가서 처음으로 복어 요리도 먹어보고 그러다 시간이 늦으니 외갓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빠와 아버지는 직장인이시지만 두 분다 샌드위치 휴가를 얻으셔서 그날 하루 자고 왔습니다. 어른들은 모였으니 축구, 정치, 경제 이야기를 하시다 고스톱으로 빠지셨고 저와 오빠, 사촌들은 가져온 노트북으로 새벽까지 무서운 영화를 다운 받아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1993년 3월 28일 저녁 5시 30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의 구포역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부근 철로에서 서울발 부산행 117호 무궁화호 열차가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는 전복사고가 발생하였다. 사망자 대부분은 6호차에서 나왔으며 뒤따라서 박힌 5호차에서도 중경상자가 속출하였다. 당시 사고 상황은 부기관차와 6호객차 2대가 특히 피해가 심했으며 6호 객차의 경우 구덩에 박힌 기관차의 뒤를 박으며 객차 앞쪽이 완전히 찌그러져 철덩어리가 구겨진 휴지처럼 되었고 그 철덩어리 사이에 뜯겨져 나온 팔, 다리들이 끼워져 있었다. 바닥은 붉은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처럼 피투성이가 되어서 구조원들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었다고.. 그리고 그날 당시 저녁에는 비가 왔었으며 빗속에서 구조 작업을 해야만..
제 나이 10살 무렵, 인천에서 강원도 모 도시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러 동업자들과 사업장을 차리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의 뜻이었죠 부모님은 사업 준비로 늘 정신이 없으셨고 저는 지방 아이들의 몰인정한 왕따에 시달리느라 늘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활달하던 제가 의기소침해 진 것이 교우 관계 때문인 걸 아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듬해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여러 일을 물어볼 겸 인천에 용하다 소문난 무당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무당은 이제 갓 스물 넘은 앳된 처자로 내림굿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이른바 신빨이 가장 센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댔습니다 더 수문 나기 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용한 신기 한번 덕 보자고 하는 꼬드김에 어머니께서는 줄곧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 내려와야만 했던 아버지의 사업운을..
난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무당집 알바하면서 귀신 들렸다는 사람은 좀 봐왔었다 그래서 그냥저냥 뭐 귀신이 방문을 두들겼다느니 뭐니 그런 허무 맹랑한 소리는 그냥 지금도 개소리처럼 들리고 내가 직접 본 귀신들린 사람들 썰을 좀 풀어볼까 해 흔히 무당은 사기다 아니다 말을 하는데 내가 판단하기엔 무당집은 거의 50%는 사기고 30%는 그냥 정신병자 20%는 나도 모르겠다 나도 귀신 이런 건 절대 안 믿거든 그런데 이 나머지 20%의 신내림은 지금도 뭔지 모르겠다 내가 당집 알바를 하게 된 건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당시 여친 어머니 진짜 친한 친구분이 무당이었거든 그리고 어머니가 좀 미신이나 뭐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고 엄청 잘 지키시는 분이었다 아마 그래서 무당 친구분도 사귀신 거겠지 그리고 그 어..
무척 다양한 곳에서 여기저기 듣고 본 내용들 중에서 무당 부분만 생각나는 대로 정리했어 정리하면서 느낀 건 무당의 주체가 보통 여성이라 그런가 잔인한 이야기가 좀 많다 1. 아이를 한 명 납치하거나 구입해서 높은 입구를 박으면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곳에 가둔다 밥때를 지키지 않고 어느 날은 이르게, 어느 날은 늦게 방울을 울리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을 입구를 통해서 준다 아이가 피접이 상골 했을 때 방울을 울리고 입구를 완전히 열면 아이가 밥을 받기 위해서 손을 올리고 있는데 이때 검지 손가락 끝을 잘라내고 입구를 다시 닫는다 아이가 죽은 후 잘라낸 손가락을 봉인하고 밥을 줄 때마다 흔들었던 방울을 울리면 아이의 혼이 밥을 먹기 위해 찾아와 점을 봐준다 2. 몇 달 전부터 큰 굿을..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 중 하나로, 신일의과대학교에서 고통감내능력실험을 수행할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는 광고사진이 그것이다 위에 나온 내용대로라면 숙련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고 사례가 5000만원이라는 데서 호기심을 끌고 있다 웬만한 대기업 연봉과 맞먹는 보수를 월급도 아니고 일당으로 지급한다면 믿어지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더 잘 보면 오싹하지 그지없는데.. 실제로 신일의과대학교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일전문대학은 있다 다만 현재 신일전문대학은 대구산업정보대학을 거쳐 수성대학교로 개명하였으며 애초에 신일전문대의 전신은 제남간호전문학교이다 현재 간호과 이외에는 방사선과나 치기공과, 안경광학과 등의 보건 관련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다 또 서울에 신일학원 이라는 학교 재단이 있는데 여기는 서울 강북구에 신일중학..
그리고 중국에서의 추억은 젊었을 적 개고생한 추억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제가 글을 올릴 이유가 없겠죠 중국 소수민족에겐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자신의 딸이나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 있는데 만약 거절할 경우 모독이라 생각하여 칼부림도 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교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학자 활동을 하면서 몇 번인가 중국을 더 가셨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고생하지 않는 합법적인 루트로 말이죠 드디어 한중수교가 맺어지면서 정식으로 중국도 여행하고 문물도 주고받는 뭐 그런 시대가 된 거죠 그런데 그 즈음에 어떤 중국 대학교수가 중국의 지방 방언이나 한자 같은 걸 연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자료, 뭐 에를 들면 그들의 언어 같은 걸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
그래서 도저히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하니까 교수님께서 메모장이랑 볼펜을 꺼내셨습니다 일단 그들도 어느 정도 글자는 쓸 수 있을 테니까 한자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과거에 워낙 중국이 넓어서 서로 언어가 안 통할 때 한자 문화권에서는 종종 이렇게 한자를 통하고 했답니다 그 노인은 메모장과 볼펜이 신기한 듯 이것저것 눌러보며 둘러보더니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이 사람들이 쓰는 한자도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자라서 뭐라고 쓰긴 쓴 것 같은데 알아보지를 못 하니까.. 한 몇 시간 좀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니까 양쪽 다 지쳐서 그냥 모든 걸 포기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그 마을에서 묵기로 했는데 그 사람들 조금 이상한 점이 보였다고 합니다 일단 교수님..
그래서 그 지저분한 물을 끓여먹어야 하기에 차 문화가 발달했다나? 일단 목이 타들어가듯 마르니까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근처의 강물을 마셨는데 이것 때문에 매일 설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급기야 잦은 설사로 탈수까지 왔고 밀림을 헤맨지 한 3, 4일쯤 후에는 정말 죽기 일본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것인지 강을 한참 따라가던 중에 저 멀리 아이들이 발가벗고 노는 게 멀리서 보였답니다 죽기 일보 직전에 사람을 만나니까 너무 반갑더랍니다 아이들이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청하겠단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아이들이 선생님과 친구분들을 보자마자 무서운 거라도 본 듯 경기를 치며 도망치더랍니다 그런 상황에 교수님께선 '여기서 저 아이들을 놓치면 난 죽을 수밖에 없어'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그냥 뛰는 아..
브로커가 말한 루트는 대강 이랬습니다 "우린 강을 통해 밀림을 지나 중국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도착할 거다 거기까지 데려다주겠다" 거기가 무슨 지방 이랬는데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좀 울창한 밀림 지역이고 워낙 외져서 중국 공안도 잘 안 찾는 오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밀입국하기엔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동남에서 밀입국을 시도하게 됩니다 브로커는 트럭과 지게차를 번갈아서 타고 갔는데 처음에는 자신을 일본의 가전제품 같은 것을 들고 가는 상인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외제 사치품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하지만 잘 사는 상류층은 알게 모르게 그런 사치품을 사 모으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스릴도 즐길 겸 일단 외제가 더 좋았으니까요 ..
교수님에게 들은 기묘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일단 그 교수님은 중국어 교수님이신데 단순히 중국어만 하시는 게 아니라 중국의 문화나 지역 역사 같은 것도 굉장히 해박하십니다 지금은 나이가 있으셔서 안 되겠지만 젊을 적 직접 중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다고 합니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그러니까 교수님이 아직 젊었을 적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중국 여행을 하는 게 쉽지만 92년 한중수교 이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중국은 그 당시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였고 실제로 종북주의자들이 중국을 루트로 북한을 가거나 주체사상을 배워오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지금과 다르게 중국을 방문하려면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자기와 뜻..
사후세계, 지옥, 천국 없어 논란거리라 좀 말하기 그랬는데 카르마라고 나중에 검색해봐봐.. 그냥 한생의 업장 그대로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할머니가 말해주는 대로 말하는 거야 내 몸의 삼십 퍼는 할머니꺼 같아 내가 느끼는 건 사람들의 기운이야 귀신 무서워하지 마라 무서운 건 사람이야 점 보러 오고 결과를 말해줘서 그 결과가 비틀리는 경우가 많아 대략적인 걸 보고 싶다면 사주를 보는 게 더 나아 여담이지만 다짜고짜 부적 쓰라고 굿 받으라고 하는 사람들 다 믿지마, 사기꾼이야 신 내림 받을 때는 내가 아닌 거 같아.. 이걸 뭐라 표현해야 되나 정말 정신이 시공간을 넘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명현현상이라 그러나.. 우리나라엔 해로운 귀신 별로 없어 근데 일본 ..
한 여고생이 버스를 탔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올라탄 할머니가 냅다 여고생에게 시비를 건다 기가 막힌 여고생이 무시하려 하니 이 할머니 갈수록 수위 높은 단어를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하고 결국 참지 못한 여고생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한다 한참 계속되던 말싸움은 결국 할머니가 여고생더러 밖에서 싸우자며 말을 꺼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버스 문이 열리고 여고생이 할머니를 따라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손님 한 명이 여고생을 말리며 안쪽으로 끌어들이더니 문이 닫혀버렸다 의아해진 여고생이 버스 기사와 손님에게 왜 자신이 내리려는 순간 잡아당기고 문을 닫아버렸냐 묻자 버스 기사와 손님은 대답 대신 조용히 뒤쪽 창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뒤쪽 창문 너머를 보는 여고생의 눈에 아쉬운 표정으로 여고생을 보며 봉고차에 올라타는 할머니의 ..
신입 트럭 운전기사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산길은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가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앞에 타사 트럭이 가고 있어 조금 안심했다 그런데 코너를 도는 도중 앞에 달리던 트럭이 할머니를 치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살아있는 것 같다 자신이 사고를 낸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시 정차하고 지켜보는데 갑자기 앞의 트럭이 후진했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할머니는 그대로 숨졌다 퇴근 후 그 일을 선배 운전기사에게 이야기하자.. "식물 인간되서 계속 치료비 내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싸게 먹혀"
예전 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긴데 학원 선생님의 지인이 돌아가셔서 급하게 목포에 갈 일이 있었대 그래서 다음 날짜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오색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대 근데 너무 생생하고 무서워서 보고만 있었는데 점점 춤사위가 사나워지더니 진짜 경기를 일으키듯이 몸을 떨다가 픽 쓰러졌대.. 그러곤 잠에서 깼는데 비행기 시간을 한참 놓쳐서 못 타게 된 거야.. 평소 늦잠을 자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상하다.. 생각하곤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더래.. "00아 살아 있냐?!" 우시면서 그러시더래.. 선생님은 무슨 소린가 하고 왜 그러냐 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타려던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거야.. 그래서 전화..
김상병은 부사수인 박 일병과 함께 불침번 근무를 서게 되었다 근무 투입 신고를 하고 오는 길, 김상병: 야 내 쪼매만 잘테니까 혹시 당직사관님 순찰 오거든 퍼뜩 깨워도 박 일병: 네! 알겠습니다 낮 내내 작업을 하느라 피곤했던 김상병은 기대자마자 바로 코까지 골면서 곯아떨어져 버렸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잠에서 깬 김상병은 근무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시계를 체크하려고 일어섰다 근데 신기하게도 자신은 일어섰는데 자신의 몸은 여전히 벽에 기대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김상병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인갑네" 하고 무섭다기보단 신기하단 기분으로 주변을 싸돌아다녔다 "잠만, 그라믄 설마..." 순간 재밌는 생각이 든 김상병은 막사 밖으로 나가 위병소로 ..
저는 지금 스물한 살이구요 누나는 스물다섯이에요 이제 내년에 스물여섯이 되는데요 누나는 사이코 패스라는 단어가 사회에 떠돌기 훨씬 전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증상은 비슷했다고 해요 누나가 어릴 때 뭔가 이상하네, 이상하네 하다가 집에 키우던 새를 꺼내 죽인 걸 보시고 부모님이 데려가서 검사를 받고 치를 시작했다고 해요 저도 조금 크고 나서 막 가서 덩달아 검사받고 그랬는데; 부모님이 저도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시려고;; 다행히 전 아니었구요;; 사이코패스는 치료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안타깝게도요.. 누나가 받는 치료는 공격성을 억제시키는 정신 치료와 사회 적응을 위한 적응훈련 같은 것들이구요 누나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과 행동이 사회에서 용인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걸 판단할..

쓰니에겐 정말 미모의 2살 위 누나가 한 명 있음 쓰니는 물론 쓰니의 누나도 공포영화 보다가 긴장감이 없어서 졸기도 하고 가위나 귀신같은 거 본적 한 번도 없는 그런 평범한 서민이었음 때는 5년 전 겨울이었음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쓰니의 누나는 학교가 수도권이라 통학하기가 조금 애매한 거리였음 또 전공이 피아노인지라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열심히 연습하기로 맘먹은 쓰니의 누나는 1학년 한 해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함 겨울 방학이 되자 누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평소 사이좋은 남매인 누나와 쓰니는 야식을 시켜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음 근데 누나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한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함 (평소에는 진지와는 거리가 매우 먼 누나임) 그 이야기는.. 누나가 기숙사 생활을 할 시절에 처음으로 가위를 눌렸..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일 년 정도 몸담았던 회사가 있었어 정말 호랑말코 같은 직장 동료 때문에 다니는 내내 너무 힘들었고 그만두면서도 막장드라마 한 편을 찍고 나온 그런 회사야 그때 알게 된 부장님이 회사 회식 때 들려주신 이야기야 부장님은 와이프 분과 단둘이 사셨어 사정으로 그렇게 된 건지.. 아님 두 분이 딩크족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애기를 그렇게 좋아하셨던 걸 보면 아마도 전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었지 다른 날과 다름없이 회사 회식에서 거하게 취한 부장님이 집으로 향하셨대 아파트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셨고 지하 3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그때 시간이 밤 12시가 다 되어가던 때인데 엘리베이터 안이 무척..
ㅃㅅㅌ 사족으로 우리 여창조주 친구분이 인터체인지 요금 정산해 주시는 일하시는 분인데 그분한테 들은 얘기임 영동고속도로에 속사 ic라는 곳이 있는데 주변이 겁나 휑하고 원래 ic 주변 가까운 거리엔 음식점이나 모텔이 들어서기 마련인데 그런 것마저 없어서 진짜 엄청 무서우니까 여자가 인터체인지 업무 볼 땐 거의 항상 둘이서 보셨다고 함 근데 어느 날 어쩌다가 창조주 친구분의 후배 직원이 혼자 보게 되셨나봄 근데 얼마 안 있다가 그 후배 직원분이 울면서 너무 무섭다고 전화하길래 직원 몇 분이랑 기숙사에서 바로 뛰어나갔는데 톨게이트까지 도착하는데 한 15분쯤 걸리셨었다고 함 그리고 창조주 친구분이랑 다른 직원분들이 그 후배 직원 일하는 호스트로 달려갔는데 후배 직원이 완전 눈이 풀려가지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나이 드신 남자분인데, 슬하에 자녀분들을 다 키워 분가 시킨 분이셔 그때가 막 귀농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라 이분도 도시 생활이 지겨워서 가평인가 어딘가 집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셨대 마침 인근에 밭이랑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빼곤 없는 한적한 땅이 있어서 거길 사셨대 집 바로 앞에 높은 뚝? 맞나? 하여튼 그 뚝 아래로 개울이 작게 있고 앞으로는 얕은 산이 있더래 거기가 밭이나 농장 부지로 딱인데 지인은 따로 집 구하는 대신 컨테이너 박스 놓고 생활하셨다고.. 이분이 처음엔 귀농 준비로 너무 바빠서 어두워지면 바로 곯아떨어지느라 아무것도 몰랐는데.. 며칠 후에 부인분이 나 여기서 못 살겠다고 밤마다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고 그러셨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밤마다 개울 쪽에서 이상한 메아리가..
이건 그 여자의 방에서 나온 일기랍니다 1996년 3월 6일 요즘 들어 신지로 씨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눈에 띄게 차가워지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것이 벌써 오래전의 일인 거 같다 왠지 자꾸만 나를 피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 난 그에게 나의 몸, 내가 가진 돈, 나의 마음까지 남김없이 다 주었는데..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만일 그가 날 버린다면... 앗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전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1996년 3월 10일 내가 사흘을 내리 잠만 잤더니..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린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꿈이겠지.. 이건 꿈이야.. 그를 이대로 보낼 순 없다 그와 나는 영원히 한 몸이 되어야만 하는데.. 아니.. 사실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는 잠시 딴 ..
블러디 메리, 왠지 좀 들어본 말 같지? 물론 브런치에 곁들여 마시는 토마토 주스에 술을 섞은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아니면 말 그대로 영국의 피의 메리 여왕이나 아이들을 죽여서 화형 당했던 마녀 메리도 있고.. 근데 내가 말하려는 메리는 또 다른 메리야 메리 워스나 메리 웨일즈란 이름도 있고 그냥 블러디 메리라고도 하고 메리란 이름은 같고 성만 다른 수많은 메리들이 있어 근데 그 메리 이야기들의 기본 줄거리는 언제나 똑같아 한 100년 전에 메리라는 엄청 이쁘게 생긴 금발의 여자가 있었대 이 언니가 좀 자기가 이쁜 걸 너무 잘 아는 자뻑녀 였나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었대 일어나면 거울부터 보고 잠들 때조차 거울을 보고 너무 예쁜 자기 ..
인터넷에 떠도는 한 괴담.. 제가 청량리 정신병원 주변에 살았을 때, 그 동네 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씀인데요 때는 꽤 오래전인가 봐요 공중전화 한 통화에 30원이었을 시절 계절은 지금처럼 더운 한여름 날씨였대요 제가 아는 아주머니가 항상 시장을 보고 가는 시간에 멀쩡했는데 어느 날 부턴가 그 병원 골목을 지나기만 하면 툭. 툭.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래요 근데 뭐 아주머니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늘 지나다니셨는데 며칠이 지난 뒤 또 그 골목을 걷고 있는데, 머리 위로 뭐가 툭 떨어지더래요 그래서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그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뭐라고요?" 그러니깐 한숨을 쉬면서 뭐라고 말은 하는데 하나도 안 들렸대요 입모양으로만 말해서 그렇게 몇 분이 지났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빠르게 도망치더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