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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괴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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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괴담

[괴담] 처녀 무당의 예언

daengo 2020. 4.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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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10살 무렵,

 

인천에서 강원도 모 도시로 전학을 왔습니다

 

여러 동업자들과 사업장을 차리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의 뜻이었죠

 

부모님은 사업 준비로 늘 정신이 없으셨고 

 

저는 지방 아이들의 몰인정한 왕따에 시달리느라 늘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활달하던 제가 의기소침해 진 것이 교우 관계 때문인 걸 아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듬해 동네 아주머니의 권유로 여러 일을 물어볼 겸 인천에 용하다 소문난 무당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무당은 이제 갓 스물 넘은 앳된 처자로 내림굿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이른바 신빨이 가장 센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댔습니다

 

더 수문 나기 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용한 신기 한번 덕 보자고 하는 꼬드김에 어머니께서는 줄곧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 내려와야만 했던 아버지의 사업운을 물어볼 겸 방문 하셨댔습니다

 

경기도 어디 등지에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였는데

 

골목 안에 간신히 알아볼 만큼 작은 깃발을 걸고 간판도 허름하게 단 집이였답니다

 

미리 예약을 했다는 이웃 아주머니 말에 대문을 밀고 들어가 머리가 빠글빠글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전하니

 

바지춤에 대충 손에 흐르는 물을 닦고는 방 안에 들어가 말을 전해주더랍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때까지도 영 무당집 같지 않다며 심각한 기색 없이 두리번거리셨댔습니다

 

말 그대로 마당이라기에도 옹색한 시멘트 바닥을 끼고 있는 작은 주택이였으니까요

 

그리고 안에 물을 열고 들어가니 새로 도배를 했는지 하얀 벽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신들의 좌상과

 

탱화에 둘러 싸인 가운데에 무당이라기엔 너무 어리고 연약하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더군요

 

이유는 모르지만 머리도 쪽지지 않았고

 

한복 같은 것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순간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답니다

 

의아해 할 찰나에 통행한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그 앞에 앉았는데

 

상 위를 더듬어 쌀알을 뿌리고 만지는 손길이 익숙해 보이지 않았고

 

조심히 눈을 들어 얼굴을 보니

 

여기저기 삐져나온 잔머리 사이에 그윽히 떠 있는 눈 사이는 시런 퍼런색이더랍니다

 

'아.. 장님이구나..'

 

딸 둘 둔 어미 마음에 어머니께선 마음이 괜히 짠해져 있으셨는데

 

옆구리를 누가 쿡 찌르길래 퍼뜩 정신이 들었고

 

조심스레 맹인 아가씨에게 남편이 올해 사업을 하는데 잘 될런지와

 

자식들이 전학을 와서 적응을 잘 못하는 거 같은데 이것이 잘 해결될런지를 물어보셨답니다

 

20~30초 침묵 이후

 

그 맹인 아가씨는 남편의 사업은 생각보다 안 풀릴 건데 아주머니께서 대비를 잘 해두면 말년엔 필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는군요

 

영 찝찝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폭삭 망한다는 말은 아니었으니 반만 믿자 라고 생각하시며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식은 셋인데.. 막내는 아들인가요?"

 

"세 명 아닌데요..?"

 

"으흠.. 첫째, 둘째는 딸이 맞는데... 막내가 아직 없어요?"

 

'딸 둘 인건 어찌 알았지?

 

있지도 않은 아들 얘기하는 거 보면 돌팔이 같은데..'

 

"네.. 없어요"

 

머쓱하게 보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맹인 아가씨는

 

쌀을 두어 번 뿌리고 거두는 행위를 반복하더니..

 

"큰 따님이... 으흠.. 안 좋네.."

 

그러고는 한참을 쌀그릇에 쌀을 만지작거리더니 큰 결심한 듯 말해주었답니다

 

"올 7월에 물귀신이 노리고 있고 

 

 11월에 길바닥에 사는 지박령이 데려가려고 할 겁니다

 

 7월까지는 물에 못 들어가게 하시고

 

 11월 한 달은 혼자 길가에 못 나가게 하세요"

 

너무 뜻밖의 말에 정신이 황망해지신 어머니를 공허한 눈으로 빤히 보던 맹인 아가씨는 작게 고개를 흔들더니

 

"11월까지 무사하면 따님 걱정은 앞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잘 풀리겠지만

 

만일 화를 입는다면..

 

내년부턴 악삼재가 낄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셔요"

 

어머니는 던지다시피 돈을 두고는 인사도 안 하고 돌아오셨답니다

 

같이 가자고.. 용하다고 꼬드겼던 아주머니는 그 후 며칠을 재미로 본 거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본인 말을 번복하셔야 했죠..

 

그해 여름 7월 중순

 

저는 단체로 단 스카우트 야영에서 냇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사람 바글거리는 사이에서 익사를 할 뻔 했습니다

 

순간 돌에 미끄러지는가 하더니 오른쪽 다리가 한도 끝도 없이 하류를 향해 끌려가더군요

 

그해 스카우트 야연은 저희 학교에서도 처음으로 타지로 간 야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그 친구집도 못 가게 하고 철저하게 단속하시던 어머니의 노고가 무색하게 저는 저를 왕따시키던 아이의 협박이 무서워 그 일당들 중 한 명의 피아노 발표회에 가게 되었고

 

11월 29일

 

학교 후문에서 150미터 떨어진 좁은 2차선 도로에서 택시와 주차된 차에 두 번 부딪쳤습니다

 

사고 지점은 막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머리와 다리가 다쳤고

 

단순 골절임에도 부러진 부위가 좋지 못해서 그 후 3년 동안 8번의 수술을 하게 됩니다

 

머리에 고인 피는 3번에 걸쳐 피스톤으로 빼내었는데

 

다행히 뇌진탕은 안 되었지만

 

그 후에도 원인 모를 두통과 기절로 오랜 기간 고생을 했습니다

 

후에 삼재를 겪을 때 너무 고생스러워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가 방책을 듣고자 하셨지만

 

이미 이사를 갔는지 그곳에 없다는 말을 전해 들으셨고

 

전화번호도 사라져서 속수무책으로 악재를 감당하셔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길게 고생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고 나서 어머니께 들은 이 이야기는 저를 늘 오싹하게 만듭니다

 

절에 다니시지만 무당이니 하는 것은 별로 믿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는 그 후에는 그런 것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하십니다

 

아.. 무엇보다 스쳐 지나갔던 그 셋째가 2년 후에 태어났으니까요

 

그 무당이 한 말은 모두 들어맞았던 거죠

 

 

 

출처: https://theqoo.net/square/6866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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