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괴담이야기

벽지나 샷시 같은건 새로 해서 깨끗한 편인데 인터폰만 유독 ㅈㄴ 더러운거임 왜그런가 하고 경비실에 물어보니까 30년전에 아파트 지어질때부터 규칙이 있는대 그중 하나가 인터폰을 절대 교체하지 말것 이라는 규칙이있대 경비아저씨도 왜있는 규칙인지는 모름 근데 그거땜에 아파트동 전체가 다 저상태래 ㄷㄷ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genrenovel&no=4136704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평일인 데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지만 기차칸의 승객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상당히 겪기 힘든 경우였다. 자리를 옮겨 그래도 사람이 좀 많은 칸을 찾아볼까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이내 그만뒀다. 애도 아니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할 나이는 지났지 않은가. 출발시간까지는 아직 몇 분이 남아 있었다. 역의 매점에서 읽을거리를 사는 걸 까먹었네라고 깨달았지만, 이제 와서 매점까지 다시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한숨 자기로 마음먹었다. 좌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외투를 벗어 얼굴 위에 헐렁하게 덮어 놓았다. 하지만 낮에 잠을 좀 자 둔 탓인지 영 잠이 오질 않았다. 몇 분을 그렇게 있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에 외투를 벗어던지고 차창 밖 구경이라도 하고 있을까..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난 저희 삼촌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물놀이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중, 고등학생 때에는 청소년 수영선수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수영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남다른 분이셨는데 삼촌이 성인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삼촌은 수영선수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못해서 22살이 되던 해에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 해남 구조대에 자원입대했는데 입대한 지 하루 만에 땅을 치며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훈련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고된 훈련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신 삼촌은 군복무 중 수중용접기술을 배우셨고 전역 후에 부산의 꽤 규모 있던 조선소에 취직해 5년간 산업 잠수부로 활..
첫 번째 이야기(안산) 고3 수험생 때 겪은 일입니다. 저희 학교는 안산 쪽에 위치한 초지고등학교이며 본관 건물 하나와 별관 건물 두 개가 있는데, 별관 건물 두 개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입니다. 별관 A에는 제가 입학하고 나서 생겼고, 체육관입니다. 별관 B 2층엔 저희 교실이 있었습니다. 저희 반에서 별관 A가 훤히 보였어요. 사건이 일어난 날은 고3 1학기 기말고사 시즌이었습니다. 대학에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놀던 1, 2학년 때와 달리 고3 땐 현실을 직시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집에서 공부를 한참하다가 영어를 하려는데 교과서만 가져오고 교제를 놔두고 온 걸 깨닫게 된 저는 주말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여름이라 낮이 길긴했지만 그땐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라 굉장히..
동아리 활동의 꽃은 동방이며 그 안에서 자고 마시고 즐길 때 활짝 그 잎을 틔우는 것인데 우리 학교 시 창작 동아리에서는 동방의 추억 따위 개나 줘버려가 되었음.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동방이 몇년전 부터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소문 때문이었는데 그 동방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겠음. 우리 학교는 전체 동이 6개 그리 넓지 않은 학교부지와 부족한 휴식 공간으로 인해서 나가서 수다떨기도 뭐하고 마땅히 모일 장소도 없는 그런 곳임. 그러나 동아리를 든 학생들에게는 꿀과 같은 휴식처가 제공되는데 그것이 바로 동아리 동방. 난 동아리 중에서 동방이있는 것! 그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동아리를 물색해 가장 내가 듣는 강의 과목들과 이동거리가 짧고 지나쳐다니기 좋은 시 창작 동아리에 들게 되었음. OO관 지하 1층. ..
꿈에서 눈에 흰자가 없이 온통 검은 동자로만 가득찬 사람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 숫자가 보존되어 왔다 그게 바로 환생이다 뭐 이런 얘기를 했다 근데 내가 말도 안된다고 과거 2천년 전의 세계 인구와 현재 세계 인구는 몇십배 차이가 있지 않냐고 했더니 그 눈이 시커먼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안되는 것들이 사람 껍데기를 쓰고 태어나서 그렇다" 고 대답함... 개꿈인데 깨고나서 기분 이상해
익소름에서 본건데 어떤 사람이 꿈을 꿨대 근데 자기 앞에 삼각형으로 어떤 여자랑 남자가 자기를 향해 마주보고 서서 눈 튀어 나올듯이 똥그랗게 뜨고 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 이랬다는거야 계속 다른 말은 안하면서 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추 이것만 하고 그래서 나중에 추추추추 뜻이 뭔가 검색해보니까
어떤 영감이 강한 여자한테 하루 종일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라서 안받았지만 계속 전화가 오더래 며칠간 근데 휴대폰을 손에 들고 보고 있으면 안 오는데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오더래 어느날은 음성 메시지를 남겼길래 들어봤더니 아무 소리도 안 들렸대 그래서 이쯤 되면 누군지 궁금하니까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해봤는데 해당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이 나와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번호를 알아봤는데 그 번호가 어디 지역번호였다함 휴대폰 번호 같은 게 아니고 집전화 같은 그래서 동사무소랑 수소문 끝에 알아보니까 십 년 전에 댐에 잠김 마을 번호였다고 함 그리고 그 음성 메시지를 다시 한번 들어보니까 아무 소리가 안 나는 게 아니었고 자세히 들어보니까 이런 소리가 났다고 함 '보글보글 보글..
꿈 내용은 존나 단순함 나는 책상에서 노트북하고 언니는 침대에서 일기 쓰는데 키가 엄청 큰 사람이 자꾸 우리 방에 들어오려고 함 얼마큼 크냐면 방문이 가슴팍에 와서 아예 어깨부터는 안 보이는? 그래서 언니랑 나는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어차피 못 들어올 거 아니까) 각자 할 일하면 들어오려고 턱 턱 부딪히다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감 그럼 꿈에서 깨 근데 요즘엔 자꾸 지 몸을 조금씩 자르고 와 3일째까진 못 들어왔는데 그제는 발목으로 문 앞에 서있었음 지 발을 자르고 온 거 ㅅㅂ 근데도 못 들어왔거든? 어제는 종아리 반까지 자르고 왔는데 첨으로 어깨가 보였어 그래도 못 들어오고 문에 턱 턱 걸리다 돌아갔는데 만약에 무릎까지 다 자르고 들어오면 어떡해? 우리 집 기독교라 점 무당 이런 거 못함 ㅠㅠ 나 너무 ..
저는 현재 직업이 하수도 유지 보수 단면보수 신설 등을 하는 회사의 기술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하수도는 이렇게 건물 밑에 있습니다. 불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보이죠. 이런 곳에서 작업하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힘든 일이 고요. 그렇기에 이런 썰들과 제가 겪은 일들을 썰을 좀 풀려고 합니다. 1부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 하수도는 공사하기 전 사전점검이라는 것을 합니다. 보통 2인 1조, 3인 1조로 들어가죠. 이 때문에 되는 것이 작업하는 위치는 시작 지점 끝나는 지점은 종단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보통 작업이 기본 몇 백미터가 기본이라 손전등 하나 들고 좁은 하수도를 기어가거나 넘어가거나 합니다. 혼자 들어가서 부서진 곳 있나 아니면 쓰레기 등이 있는지 퇴적물이 있는지 찾아보러 들어가죠..
당시 고3이었던 저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집 분위기도 안 좋은 상황이어서 유난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집에 일찍 가지 않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날도 독서실에 갔었습니다. 유난히 공부가 잘되어서 정해 놓은 분량을 일찍 마치고 한 시간 정도 쉴 겸, 독서실 봉고차로 먼저 내려갔습니다. 다니던 독서실은 봉고차를 운행했는데 새벽 1시에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1시까지 공부했지만, 그날은 봉고차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좀 쉬려고 했던 것입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려고 가방을 뒤적이는데... 똑- 똑- 봉고차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어떤 할머니께서 봉고차 안을 보고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데 할머니는 아랑곳..
출처: pann.nate.com/b316153501 *스압 주의* 퇴마 에피소드는 친구가 과거얘기 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준 자신이 겪은 귀신이야기임 (녀석은 귀신에 대한 이야길 잘 하지 않음) 그 처음이자 마지막 이야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답게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상당히 긴 이야기였음. 연재(?) 당시 사설에도 써놨지만 녀석의이야기를 토대로 구성을 더해 곳곳에 살을 입히거나 빼서 작정하고 소설처럼 작성하니 소설보는 기분으로 적당히 가볍게 읽으면 킬링타임용으로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 원래 퇴마 에피소드는 귀신보는 친구얘기를 종결시키는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글임 (나중에 요청으로 인해 특별편이나 異, 形 같은 추가 에피소드가 나오긴 했지만) 예고했던 대로 지금과는 다른 타입의 이야기고 한개의 에피소드..
출처: pann.nate.com/b316130203 숨바꼭질 비교적 최근 이야기임. 짧게 가겠음. 이전 에피소드들에도 나왔듯이. 난 귀신을 엄청 보고 싶어 하는 사람임. 오컬트적인 얘기도 엄청 좋아하고 외커 공이갤이나, 번역괴담, 괴담 블로그 잠밤기 등등 아직도 엄청 돌아다님 (호러 덕후임) 어느날인가 혼자 하는 숨바꼭질 이란게 엄청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음. 그래서 저거 진짜 되나? 싶었음. 이게 나홀로 숨바꼭질 방법인데. 저기 퍼온건 술래는 어쩌구 찾았다 어쩌구가 한국말로 되있는데. 내가 처음 봤을땐 2ch 에서 막 건너왔을 때라 저 주문(?) 은 일본말이었음 샤이쇼노 오니와 어쩌구 저쩌구 (잘 기억안남) 아무튼 저거 해봐야지 싶었는데. 우리 집은 항상 부모님이 계심 그래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음. 모텔..
나붕 꿈에 무당이 자주 나옴. 어떨때는 내가 무당이기도 하고 신들리기도 하고 그럼. 여러 무속인들 모아서 큰 굿하다가 죽는꿈도 꿨었음. 그건 그렇고 꿈속에서 나붕이 무당 집에 점 같은걸 보러 갔음. 그전까지 레알로 한번도 무당집 가본 적 없었는데 꿈속에서 처음 갔는데 무당이 대뜸 나한테 너 그렇게 화장하지마, 하고 얘기를 하는거임. 꿈속에서 나붕이 눈 화장을 되게 벌겋게 하고 다녔음. 친절한 금1자씨처럼. 몇 번이나 나한테 빨간 눈 화장하지 말라고, 후회할 거라고 무당이 말했는데도, 내가 그 화장이 좋으니 계속하고 다녔음. 그러고 점을 보고 온 지 며칠이 흘렀음.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하려고 거울을 보는데 온몸이 막 부들부들 떨리면서 팔다리가 지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함. 그리고 갑자기 방울소리가 ..
그 언니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귀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술자리에서 듣고 술이 확 깨더군요. 그 경험을 한 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고... 그 언니는 양재동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그 회사는 10층이 넘고 꽤 큰 건물에 있대요. 큰 길하나 건너면 큰 산이 있는 건물에 두 층을 세를 내서 쓰고 있답니다. 소문이 전엔 묘지였던 자리에 건물을 세워서 그런지 그 건물이 음기가 세다는 말을 사람들이 자주 했다고 합니다. (여자 사원들 기가 쎄다고 그런 말로 자신들을 위로하곤 했다더군요) 그 회사는 일이 별로 많지 않아 주말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대요. 그런데 매일 주말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당직을 세운답니다. (언니가 굉장히 불만이 많아요) 지난 1월에 일요일에 언니가 당직을 서..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아 공장에서 일을 하던 네팔인 여성 노동자가 있다. 한참을 헤매다 배가 고파진 그녀는, 근처 식당에서 라면을 시켜먹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지갑이 없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계산을 하지 못하고, 식당 주인은 경찰에 신고한다. 결국 여자는 경찰서로 끌려오게 되고. 경찰은 한국말을 더듬는 그녀를 행려병자로 취급, 정신병원으로 넘겨버리고 만다. 이번에는 정신병원으로 끌려온 여자. 의사는 그녀에게 이름과 신상정보를 묻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여자는 의사에게 네팔어로 말을 하자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의사는 헛소리를 한다고 진단내리며 그녀를 강제로 떨쳐낸다. 결국 의사는 그녀의 상태를 '정신지체,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여자는 정신병동에 수감된..
그렇게 1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1주일간 저희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석현이의 상태가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각자 1주일간의 시간을 보내고 금요일 저녁에 모두들 모여서 그 지역 무속인의 신당에 찾아갔습니다. 석현이는 석현이 부모님과 함께 1주일간 그 집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습니다. 1주일간 석현이는 밤만 되면 나가야 한다 또는 누군가 자기를 기다리니 같이 가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다행히 무속인 분들의 도움으로 1주일을 무사히 보낼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화는 1주일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상태였고 금요일 밤 저희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다행히도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기는 했다만 이미 감긴 상태여서 언제고 또다시 다른 영가가 석현이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
이녀석들을 만난 건 02년도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에 심취해 있었다. 디아블로라는 게임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친해지게 되었고 그 인연은 월드오브워크래프라는 게임으로 발전했다. 결국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었고 2000년 초 중반부터 흉가를 다녀보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나라에 유명한 흉가라는 흉가는 거의 모든 곳을 다녔던 것 같다. 공주/나주/김천/곤지암/영덕/제천/경산 코발트 공장 기타 등등 모든 흉가를 다 가본건 아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그런곳은 웬만하면 다녀왔던 것 같다. 저 모든 곳을 다니는 동안 남들이 다 겪는다는 악몽 나쁜 일 같은 건 우리한테는 없었다. 그저 편하게 다녀왔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

트위터에 올라온 평범한 밤풍경 사진.. 그런데 크레인 끝에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매달려 있다,,
하얀 삼배옷을 입은 어머니는 어느때보다 고왔다. 눈을 붉게 충혈되었고 몸을 가누지 못해 아버지에게 기대어 가뿐 숨을 쉬고 있었지만 가냘픈 아름다움 같은게 있어 자꾸 눈이갔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시선은 나에게 없다. 높은 탁자 위에 놓여진 언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지금 아버지의 눈가엔 아까 닦아낸 짠 눈물이 맺혀있었다. 오늘은 언니의 장례식이다. 언니는 이유 모를 병으로 언제나 방에 누워만 있었다. 아니, 이유모를 병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 뿐. 어린 나에게 어른들은 넌 몰라도 돼...라며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겐 이유모를 병이다. 방에 누운 언니는 언제나 방 가사리에 붙은 작은 창으로 하늘만 올..
내 나이 8살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대대로 경영하던 포목상을 접고 조상님을 뵐 낯이 없다며 실의에 빠져 술로 날을 보내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주무시듯 돌연히 가버리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뒤를 따르듯 조용히 떠나셨다, 늘 나를 업어주고 안아주기만 하던 다정한 할머니의 죽음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언제나처럼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네가 이 집 장손이니 정신차리고 어머니, 아버지 잘 도와드리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이야. 아버지는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장사를 그만두었으니 나와 2살 위의 누나, 그리고 또 동생을 가진 어머니를 어떻게 먹여 살릴지 막막했다. 더구나 집을 팔아 포목상을 정리할 때 들었던 빚을 갚고 나..
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음. 같은 동에 늘 같이 놀던 형도 살았음. 나, 동네형, 울엄마, 그 형의 엄마 이렇게 넷이 친하게 잘 다님. 그런데 어느 날 새벽녘, 그 형의 엄마가 현관 밖에서 자꾸만 칙칙- 하는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 자다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저승사자가 현관 앞 복도에서 엎드려 네발로 기어 다니고 있었음. 그것도 그 형의 집 앞만 왔다갔다. 뭔가 쓸리는 소리는 검은 도포가 바닥에 칙칙 끌리는 소리.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저승사자는 신경도 안 쓰고 계속 느릿느릿- 그 집 현관 앞만 왔다갔다 계속 엎드려 기어 다님. 하지만 꿈이었음. 다음날, 그 형의 엄마는 당연히 무서워 참지 못하고 친한 울엄마랑 점집에 찾아감. 무당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자마자, '그 집 손(孫)이 ..
1994년, 그 당시 피자는 지하 작업실과 유사한 환경의, 그러나 훨씬 더 후미지고 좁은 서울 변두리의 단칸 지하실에서 음악 연습을 하며 살고 있었다. 네평 남짓되는 지하 공간... 난방시설은 물론 창문도 없어 낮밤조차 구별이 되지 않음은 물론, 싸구려 방음벽으로 온 내벽이 시커먼 색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수도관마저 파열되어 물만 틀면 천정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던, 말 그대로 음침한 곳이었다. 자정 무렵이면 잘 닫히지 않는 철문 틈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먹이를 달라던 한 마리 굶주린 검은 고양이의 괴괴한 울음소리마저도 차라리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고적함과 음습함이 감돌던 그곳... 환경이 이랬던 만큼 이곳에서 살던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도무지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매일같이 악몽에 시..
저희 시골은 충남에 있는 청양이에요 척 들으면 청양고추가 유명할 것 같지만, 고추보다 유명한 '구기자'가 있는 곳이죠. 시골이다 보니 정말 낡은 집들도 많고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물도 더러 있어요. 지금도 시골에 가서 지나가다 보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으스스한 건물도 많아요.. ㅠ.ㅠ 참, 서론이 길었는데 공게에 있는 도깨비 관련된 글을 보고 생각이나 써볼게요.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워낙 디테일하고 저도 들은 대로 적기보다 디테일하게 적는 걸 좋아해서 어쩌면 1,2로 나뉠 수도 있겠네요ㅎㅎ 이 얘기는 제가 어렸을 적 마을 잔치날 회관에서 어떤 할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예요. 시골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냇물이 흐르는 냇가 옆 그 자리 그곳에 자그마한 건..
어떤 일행이랑 귀신? 괴물? 같은거한테 쫓기고 있었는데 순간 꿈인거 알아채고 '이거 꿈임 우리 안 도망가도 됨' 이렇게 하니깐 같이 쫓기던 일행이 나 죽일듯이 쳐다보면서 '너만 꿈이잖아' 이러고 깸 왤케 기분더럽냐 출처: https://www.fmkorea.com/best/1994594342
저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집 주변이 온통 농지에 해만 떨어져도 주변이 깜깜합니다. 게다가 다른집은 노인분들만 사시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은 저희 집 밖에 없죠. (그만큼 저희 마을에 노인분들만 계시다는 말입니다. ㅠㅠ) 그래서 그런지 저희 마을은 아직도 전통 행사와 같은 것을 많이 합니다. 설이면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윷놀이를 한다던가 추석에 쥐불을 돌린다던가 하듯이 말이죠. 이런 행사중 특이한 행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3년에 한 번씩 무당을 불러 마을 굿을 합니다. 그리고 무당이 굿을 끝내고 마을을 돌며 시찰을 하죠., 그리고 마을 사람들 중 몇명을 골라 운세를 봐주기도 하죠. 그리고 이러한 행사중엔 가끔 신기한 일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엔 제가 들은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

제목: 밤길 여학생 납치사건 주의 안내의 건 입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8월 29일 10시 40분경 단지 내에서 봉고차를 이용한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학원에 갔다 오는 여학생(중학생)에게 할머니가 접근하여 기를 묻는 척하면서 근처에 세워놓은 승합차로 학생을 유인하여 태워가려고 하였으나 이상한 느낌을 받은 여학생은 다행이 도망을 쳐 잡히지는 않았으나 각별히 주의를 요구하는 사건입니다. 어린이는 물론 모든 여성이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오니 각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각별히 주의를 당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할머니로 가장한 납치범은 여학생에게 - 205동이 어딨느냐? - 경비실은 어딨느냐? 물으면서 승합차에 태워 길을 안내받는 척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물을 때 절대..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그러니까 일본 버블 이전까지 한국에는 소위 "현지처"라는 게 있었습니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 첩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화류게 여인들의 최종 티어 취급이었습니다. 매일 붙들려 살 일 없이 일본인 '남편'이 한국에 들어올 때만 말 그대로 현지의 '처'역할을 해주는 것이었죠. 그래서 일본인에 대한 대우가 꽤나 지극정성이었다는데, 88올림픽 지나서 갑자기 일본인에 대한 호응이 갑자기 팍 식어버리는 일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괴담이 유행해서 그랬다는 게 당시 세칭 '보도'였던 아저씨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뭐 좀 잘 나가는 여성이 있었는데 일본인 손님이 와서 돈을 좀 풀더랍니다. 봉이구나 싶어서 지극정성 달라붙어서 같이 뽕도 맞고 술도 먹고 당연히 잠자리까지 같이 했는데 그 인간 취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