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괴담이야기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3 (네이트판 레전드 소름글) 본문
앞글에 썼듯이 저희 외가에는 항상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어요.
그건 지금뿐만아니라 울엄마가 어렸던 시절에도 그랬었대요.
이유 없이 몸이 아픈 사람, 앞일이 궁금한 사람, 꿈자리가 계속 사나운 사람 등등..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사람들은 결혼을 하기 전에 궁합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
결혼하는 당사자보다는 그 부모님들이 많이 찾아오셨대요.
울엄마가 꼬꼬마였던 어느 날.
옆마을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아저씨 한 분이 할머니를 찾아왔대요.
사주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제 딸이 결혼을 하려 하는데 사윗감이랑 궁합 좀 봐주십시요"
할머니는 그 아저씨를 신집으로 들어지도 않고 길바닥에 선채로 종이를 펼쳐보셨대요.
잠깐 종이를 보는 듯하더니
"절대 결혼시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십시오."
라고 말씀하신 후 신집으로 가버리셨대요.
그렇게 며칠 후, 그 아저씨는 또 할머니를 찾아와서
"다시 한번만 봐주십시요"
라고 하셨대요.
역시나 할머니의 대답은
"이 결혼 반댈세.. 그리고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마십시요.."
또 며칠 후;; 뚝심 있는 옆마을 아저씨는 또!! 할머니를 찾아와서!!
"제발 다시 봐주십시요"
신집이 아닌 식구들이 거주하는 집 마당에 퍼져 앉아서 땡깡 아닌 땡깡을 피웠다고 해요.
엄마를 비롯 엄마 형제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고아경을 지켜봤대요.
(할머니 성깔내기 일보직전)
평소 같으면 버럭 역정을 내시고도 남았을 테지만, 할머니는 그 아저씨에게 말씀하셨대요.
"당신 딸, 그 남자한테 시집가면 얼마 못 가 다시 친정으로 오게 될 거요.
그것도 억울한 채로 오게 될 텐데, 그런 결혼을 왜 시키려고 안달인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말, 잘 기억하고 돌아가세요.
다신 내 집에 찾아오지 말고."
할머니는 화는 내지 않으셨지만 조용하게 차가운 말투로 말씀하셨고
옆동네 아저씨는 민망함과 울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옆동네 처녀가 시집을 간다는 소문이 들려왔구요.
집에서 구식 혼례를 치른다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엄마와 이모들은 구경하러 가고 싶어 했지만
(구경은 핑계임. 오로지 목적은 잔치음식ㅋㅋㅋ)
할머니의 반대로 집에만 있어야 했대요.
그렇게 옆동네 처녀가 시집을 가고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 갈 때쯤,
역시나 소문은 무서운지라, 또 그 처녀에 대한 소문이 돌았대요.
"시집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소박 맞고 쫓겨나나;;"
그랬던 거죠.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 처녀는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됐네요.
그 당시 할머니는 먼 곳으로 기도 (가끔 집이 아닌 먼산에서 오랫동안 기도와 정성을 보이셨음)를 하러 가실 준비가 한창이었고
늘 그랬듯 떠나기 전 할머니는 삼촌들과 이모들 울엄마를 한자리에 불러 앉히고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대요.
(신에게 노여움 살만한 행동 금지, 집안 어른들 그리고 동네 어른들에게 깍듯해야 한다 등등)
그렇게 할머니는 기도를 위해 먼 곳으로 떠나셨고 일은 그날 밤에 생기고 말았대요.
옆동네 처녀의 아버지,
즉 할머니께 궁합을 물어보러 왔던 옆동네 아저씨가 식구들이 잠들었을만한 밤중에 저희 외가에 불을.. 질렀어요.
잠결에 부스스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니 분명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짚더미들이 마당 여기저기에 놓여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대요.
엄마는 벼락같이 일어나 이모들의 뺨을 때리며 흔들어 깨웠고
이모들도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앉았다가 불을 보곤 깜짝 놀라 다른 식구들을 깨우러 달려갔대요.
(울엄마의 형제는 지금은 6남매지만, 원래는 7남매였다고 함.
엄마 바로 밑에 남동생이 하나 있었음.
태어날 때부터 기관지가 약해 천식으로 고생했다고 함.
할머니는 아픈 자식을 위해 곱절로 울며 기도하셨다고 함.)
주무시던 외할아버지, 행랑할머니, 엄마의 고모들, 삼촌들..
방마다 문을 열어제끼고 소리를 질러가며 식구들을 깨우고
마당 우물에서 물을 길어 여기저기 뿌리고..
집에서 가장 많이 타들어갔던 곳은 행랑채였대요.
엄마 밑의 남동생(작은 외삼촌)은 어릴 때부터 행랑할머니 곁에서 떨어지질 않아 항상 행랑할머니가 옆에 끼고 주무셨다고 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대요.
한옥집이라.. 한번 불이 붙으면 뛰어들어가 행랑할머니가 작은외삼촌을 들쳐업고 나오셨대요.
둘 다 정신을 잃고 마당에 쓰러져 있는 걸 큰이모가 물을 가져와 얼굴에 붓고 난리였다고 하네요.
그때쯤은 이미 동네 사람들도 전부 깨서 집집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통에 물을 길어와 여기저기 뿌리며 불길잡기에 여념이 없었대요.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행랑할머니와 작은외삼촌도 정신을 차린 후,
그제서야 다리가 풀려 훌쩍거리고 있는 이모들과 엄마를 동네 사람들이 달래줬대요.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에 마당으로 울며 뛰어들어오신 건 우리 할머니.
머리는 산발에, 옷은 여기저기 흙 묻은 소복에, 고무신 한 짝은 어딜 간 건지..
할머니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망연자실 마당에 서계셨대요.
다른 식구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닥에 누워 콜록이던 작은외삼촌을 꼭 끌어안고 오랫동안 마당에 앉아계셨다고 해요.
그렇게 날이 밝고 여기저기 손볼곳이 많아져, 집에는 목수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몰려왔대요.
엄마와 이모들도 불에 탄 세간살이 등을 정리하느라 바쁠 때,
할머니는 작은 외삼촌을 신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밖에 나오지 않으셨대요.
행랑할머니가 끼니를 걱정하며 한 번씩 갔다 오실 때마다 한숨에 눈물이 끊이질 않았구요.
결국 할아버지가 신집으로 가서 할머니와 작은외삼촌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가셨대요.
거기서 들은 의사의 말은..
본래 기관지가 약한 아이가 독한 연기를 많이 마셔서 이미 가망이 없다는 말..
작은외삼촌을 등에 업은 할아버지와 산송장처럼 변해버린 할머니가 대문간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영문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어요.
가망 없다는 의사의 말은 전해 듣지도 못했던 엄마였지만, 아버지 등에 업힌 남동생의 발을 붙잡고 곡을 하듯 펑펑 우셨대요.
"영아, 그만 울어라, 조금만 아껴둬라"
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작은외삼촌을 안채에 눕히셨대요.
그리고 그날 밤, 작은외삼촌은 할아버지, 할머니, 행랑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어요.
집안 식구들이 곡을 하고..
집안의 남자들은 "누군지 몰라도 집에 불낸 놈 가만 안 둬!"
라고 이를 악물며 눈물을 흘리셨대요.
(이때까지는 옆동네 아저씨가 불 지른걸 할머니만 아셨던 상황)
부모보다 앞서가는 자식은 불효자다.라는 의미로 부모 앞서 떠난 자식은 정식 무덤이 아닌 돌무덤을 만들었으므로 최소한의 격식만을 갖추고 작은외삼촌은 돌무덤에 묻히셨대요.
(우리 외가만 그런 건지 전부 그런 건지는 모르겠음;)
집안의 여자들은 남겨두고 남자들만 산으로 올라가 돌무덤을 만들고 내려왔다고 하네요.
무덤이 어딘지 알려주면 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밤낮 거기 가서 울어댈게 뻔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갔던 남자들만 무덤 위치를 알고 식구들에겐 알려주지 않았대요.
하지만 귀신은 속여도 우리할머니를 속일수 없지.
항상 단정하고 깨끗하게 한복 입고 쪽진 머리에 비녀 꽂고 입술 물들이였던 우리할머니는..
작은외삼촌이 돌아가신 후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셨대요.
풀어해친 머리에 지저분한 소복 차림에 신집에 틀어박혀 우는 날이 계속됐다고 해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하던 할머니는..
어느 날부턴가 신도 안 신은 맨발로 작은외삼촌의 돌무덤에 찾아가기 시작하셨대요.
할머니 걱정에 잠 못 이루시던 할아버지가 밤에 본건..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신도 안 신고 산으로 향하던 할머니의 모습.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무덤 앞에 서신 할머니는 밤이 새도록 무덤 옆에서 통곡하다가 날이 새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대요.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할아버지께서는
"죽은 자식 맘 아픈 거야 나랑 똑같겠지.
그래도 다른 자식이 여섯이나 있는데 이렇게 정신줄 놓아버릴 거요?
이 사람아 정신 차리게...
이러면 ㅇㅇ(죽은 외삼촌)이도 마음 편하게 못 가!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러나!"
하고 할머니를 설득하셨대요.
작은외삼촌의 물건, 옷들, 몇 장 없는 사진까지 전부 불태워 보내주고... 힘들게 지나가던 어느 날..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고운 모습으로 안채에서 나오셨대요.
삼촌들, 이모들, 엄마를 불러 세워서 "가자"라고 말씀하신 후 데려가신 곳은 신집.
평소 신집 주변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지만 그날은 할머니가 직접 문을 열어주셨대요.
집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집안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두신 할머니는
"ㅇㅇ이 좋은 곳으로 가게 기도나 한번 실컷 해보자!"
라고 씩씩하게 말씀하셨대요.
엄마는.. 그날은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질 않았대요.
그저 형제들과 마당에 앉아서 "좋은 곳으로 가라"라고 마음속으로 비셨다고 해요.
불이 나던 밤, 그 동네에서 얼쩡거리던 술 취한 옆동네 아저씨를 봤다던 동네 사람들의 말도 소문으로 떠돌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도 못 내고 우는 처녀에게 집안 남자들은 욕을 퍼부었대요.
할머니는 처녀의 손을 잡고
"애비가 욕심이 많지...? 한 번만 가면 될 시집을 두 번이나 가게 됐으니 니 마음도 좋진 않겠구나
니 애비는 고양이 같은 모습이란다...
넌 쥐와 같은 모습이고 니 전 남편이라는 작자는 뱀의 모습인데..
어떻게 같이 살 수가 있나?
아이를 못 가진다고 쫓겨났다지?
근데 넌 남편이라는 사람 속살 한번 본 적 없을 거야.
쥐가 뱀의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나 되냐?
그런 놈이 니 몸 안 건드리고 딴년한테 빠져있던 게 너한테는 천운이었어.
여기 갇혀 살지 말고 애비한테서 떨어져 멀리멀리 넓은 곳으로 가서 살아라"
너무나 담담하게.. 하지만 불은 낸 아저씨의 잘못은 입 밖에도 내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에 식구들은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대요.
처녀가 돌아간 후, 다른 식구들이 할머니한테 따지듯 물어봤다고 해요.
"그놈이 불만 안 냈어도 ㅇㅇ이는 멀쩡 할 텐데 어쩜 그렇게 아량이 넓소? 부처님이요?"
"ㅇㅇ이는 좋은 곳으로 갔어.
입 밖에 꺼내지 말아라. 아파서
힘들었던 아이야.
우리가 자꾸 얘기하면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할지도 몰라"
그 얘기를 끝으로 할머니는 다시는 작은외삼촌 얘기를 입에 담지 않으셨대요.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
전 정말 꿈을 자주 꿔요.
그것도 리얼리티 200%인 꿈들을;
꿈이 거의 들어맞는편이다보니...
꿈에서 깨어나도 그 꿈을 되짚어보느라 밤새기가 일쑤네요.
그런 본인에게 하우스메이트인 세라가 향초를 선물해준 적이 있어요.
머리맡에 피워두고 자면 숙면을 취한다는 ㅋㅋㅋ
바람만 불면 귀가 접히는 본인이기에 선물 받은 그날 바로 향초를 피워놓고 잠을 청했어요.
잠 속으로 빠져들어갈 때쯤...
꿈에 처음 보는 남자가 보였어요.
분명 처음 봤는데.. 정말 많이 본 듯한 얼굴.
제 얼굴이였네요.
얼굴형, 눈매. 입술까지..
근데 분명 남자였어요.
그 남자가 제게 등을 보이며 업히라는 신호를 보냈고,
전 말없이 그 등에 업혔어요.
절 업은 그 남자는 우리집 현관문을 지나 마당으로 갔어요.
그리고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에 절 던져ㅋㅋ 버렸어요..
꿈에서도 꼬리뼈가 돌멩이에 부딪히는 아픔에 ㅠㅠ 눈을 부라리며 남자에게 대들려던 순간,
남자는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곤 가버렸어요.
꼬리뼈의 아픔에 눈을 떠보니..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건드린 듯.. 향초가 엎어져 옆에 있던 책에 불이 붙고 있었어요.
헉! 하며 책장에 붙기 시작한 불을 꺼버리고..
꿈에서 봤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려봤어요.
그건.. 지금 제 모습에 머리만 짧으면 싱크로율 100%를 자랑할.. 그런 모습.
다시 향초를 켜긴 무서워서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청한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한테 꿈 얘기를 해드렸어요.
말없이 듣던 엄마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더라구요.
며칠 후 할머니 뵈러 외가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그 꿈 얘기를 다시 꺼냈어요.
역시 말없이 듣고만 계시던 할머니..
"잠깐만 앉아있어라"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시더라구요.
다시 돌아오신 할머니의 손에 있는 건 사진 한 장.
지금까지 할아버지 몰래 할머니가 숨겨뒀던 사진이라고 하셨어요.
전 처음에 봤을 때 울엄마 어릴 때 사진인 줄 알았어요.
울엄마도 ㅋㅋ "이거 내 사진이네?" 하실 정도로..
"영이 니 사진 아니다.
죽은 니 남동생 사진이잖아.
희야 외삼촌 말이다."
오래된 흑백사진이었지만 엄마가 어릴 때 그리고 제가 어릴 때랑 정말 똑같았어요.
"니 외삼촌이 어려서 떠나서 그렇지..
니 나이쯤 컸다면 니 꿈에서 본 그 모습이겠지?
그날.. 집에 불이 나던 날, 내가 만약 드리던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마쳤다면 ㅇㅇ이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땐 나도 젊었으니까.. 눈 앞에 훤히 보이는 걸 두고 기도에 열중할 수가 없었어.
하던 기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신에 대한 불신을 이렇게 보여드리게 되는구나.. 하고..
그래도 하늘이 도우셨는지 ㅇㅇ이는 좋은 곳으로 가서 잘 지내고 있지.
ㅇㅇ이가 죽기 전에 불나는거 봤던 게 무서웠나 보다.
희야 꿈에 나타나서 물속에 던져버렸다니.."
할머니 말씀에 엄마랑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난 외삼촌이 지켜주는 여성이다!"
를 외치며 향초를 넘어뜨려 불낼 뻔했던 우리 집 고양이님 엉덩이 한 대 때려주는 걸로 마음 정리 ㅋ
아.. 역시 길어졌네요.
우리 모두 감기조심 불조심(?)하도록 해요.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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