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괴담이야기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네이트판 레전드 소름글) 본문
첫 번째 글에 썼듯이
'보여서는 안 될 것들이 보일 것이다'
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사실이었어요.
스무살 이전에 내가 알아왔던 것들은 희미함, 직감, 예감, 촉? 등등 느끼고 있는 본인도 100% 확신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면
스무살 이후 (정확히는 할머니의 사고 이후)에 제게 와닿는 것들은 200% 확신이 들만큼 뚜렷하고 선명하게 와닿았거든요.
음주가무로 인해 뻥뻥 뚫린 1학년 마지막 성적표를 받게 된 저는ㅠㅠ
'수석이나 차석 둘 중에 하나 하기 전까진 용돈 없다!'
라는 엄마의 말씀에 ㅠㅠ
거지 같은 몰골로 알바를 구하러 다니게 됐어요.
편의점? 커피숍? 패스트푸드? 등등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지만
이미 겨울방학이 시작된지라 알바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ㅠㅠ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쯤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저에게 빛을 내려주더라고요.
자신의 동생 (여고생 고2) 과외를 해달라는 ㅋㅋㅋ
전.. 정말 너무나 철저한 문과형 인간이었기 때문에
"혹시.. 수리나 과탐 같은 영역도 가르쳐야 해?"
라고 친구한테 물었는데 친구님의 대답은 ㅋㅋ
"내가 널 잘 알잖아.
그냥 언어영역이랑 외국어영역만 가르치면 돼"
라고 쏘쿨하게 말하더라고요.
당장 친구의 집으로 가서 친구 어머님께 넙죽 인사 ㅋㅋ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과외를 시작해달라는 친구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귀가.
과외 시작날이 되기 전까지 고딩때 공부했던 걸 대충 들춰보며 각오를 다졌더랬지요;
대망의 월요일
친구 집에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동생 방으로 직행.
어색하게 "안...녕?" 하려는데ㅋㅋ 나참 ㅋㅋ
책상 위에 다소곳이 펴져있는 문제집과 노트를 상상했던 저는 그냥 무너져 내렸어요.
침대에 널브러져서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동생 ㅋㅋ
왜 그랬니 동생아 ㅋㅋ
어머님께서 뒤따라 들어오셔서 동생 등짝을 후려갈겨도 그저 묵묵부답
"너 언니 친구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후딱 못 일어나??"
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고이 씹어 드시는 ㅋ
고개를 살짝 돌려 저를 흘끗 쳐다본 동생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뭐야 저 언니 왜 저렇게 작아?"
(나중에 정확히 들은 동생의 키는 172cm)
(본인의 신장은 160cm입니다. 185 아빠와 155 엄마 사이에서 나온 루저계의 1인자랍니다)
허허허. 안 되겠구먼 ㅋㅋㅋ
전.. 일단 웃는 얼굴로 어머님을 방 밖으로 모신 후에 동생을 책상 앞에 끌어다 앉혔어요.
"지민(가명)아, 너 지금 공부 안 하면 언니보다 더 키 작은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면서 살 수도 있어"
한마디 툭 던지니까 다시 제 얼굴로 빤히 쳐다보더라구요.
"같은 말 여러 번 하는 거 싫어하니까 지금부터 내가 읽는 책 내용 집중해서 잘 들어 (입 닥치고)"
하여, 지민이와 저의 과외수업은 시작되었어요.
하루에 언어 2시간 외국어 2시간, 도합 4시간
처음 며칠은 몸을 비비 꼬더니 일주일째가 되니 그래도 자리는 지키고 앉아있어(!)주더라구요.
하루에 주구장창 4시간 동안 얼굴 맞대고 있다 보니 처음의 그 싸가지는 점점 녹아내렸구요.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저는 꿈을 꿨어요.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지민이 방문 앞에 삐약거리며 서성거리는 꿈.
다음날은 그 병아리가 지민이 방 안에 들어가는 꿈.
이틀 연속 병아리 꿈이라니;;
이게 뭔 꿈인가 싶었지만 일단은 용돈을 위해서! 지민이 집으로 출발.
우리는 평소처럼 책상(좌식)을 펴놓고 마주 앉아있었어요.
언어영역 문제집을 들쑤셔가며 과외 열정(용돈...)을 불태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지민이 집에는 어린 아기가 없고.
혹시 고양인가? 싶어서 불어봤더니 고양이 안 키운다는 대답뿐.
도둑 고양인가? 하면서 다시 문제집을 쳐다보는데 조금 더 크게 들리는 울음소리.
"지민아, 옆집에 애 키우니?"
"아니, 옆집에 할머니 한분만 사시는데."
그럼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기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는데
같은 방에 있는 지민이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는 상황이 계속됐어요.
그렇게 며칠 후, 어머님이 친절하게 가져다 주신 간식을 씹어먹으면서 저는 제가 한 가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 나 예전에도 이런 일 있었어.."
제가 초딩1학년 때, 그때까지만 해도 전 금지옥엽 외동딸이었어요.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항상 엄마한테 안기곤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엄마 옆에 있으면 들려오던 희미한 아기 소리.
엄마한테 아기 소리가 들린다고 몇 번씩 말했었지만
"니가 잘못 들은 거야.."
라며 부정하시던 울엄마는 ㅋㅋㅋ 며칠 후에
"희야.. 너한테 동생이 생긴 거 같다..."
라며 말씀을 하셨던..ㅋ
원래 엄마아빠는 저 말고 다른 자식을 낳을 계획이 없으셨대요.
음.. 내 동생에겐
"넌 철저한 가족 계획하에 태어난 소중한 아이란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알고 있어요.
사고의 결과가 제 동생이라는 걸ㅋㅋ 미안해 동생아 ㅋㅋ
어쨌든 그 옛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제 시선은 지민이의 배에 꽂혔어요.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기소리.
그날 과외를 대충 끝마치고 지민이를 밖으로 불러냈어요.
혹시나 누가 들을까 인적 없는 놀이터 ㅋㅋ 로 불러내서 옆에 앉힌 후에
"지민아 너 혹시 임신했어?"
라고 돌직구를 날려버렸더랬죠..
(저때도 급한 성격, 말 돌려서 잘 못함.)
뭐?? 언니가 미쳤어?? 하며 지민이가 벌떡 일어나더라구요.
"확실하게 말해봐. 너 임신한 거 아니야?" 두 번째 돌직구
"아니라니까? 언니 진짜 미쳤어?"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지민이는 집으로 가버렸어요.
그리고 그날 밤, 친구(지민이 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민이가 어머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과외 안 해줘도 된다고..
그렇게 전하랬다고 ㅠㅠ 하며 친구도 미안해하더라구요.
날아간 내 알바자리...도 알바자리지만
전 지민이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진 후였거든요.
잠들기 전에 지민이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지민아, 혹시 힘든 일 생기면 언니한테 꼭 먼저 연락 줘야 해. 공부 열심히 하고."
그리고 다음날부터 새로운 알바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ㅠㅠ
며칠 만에 겨우 새알바를 구해서 열심히 접시를 나르고 주문을 받았더랬죠.
한 달쯤? 접시와 한몸이 되어 날아다니고 있는데
제가 일하던 가게로 친구와 지민이가 찾아왔어요.
"에이~ 올라면 쫌만더 빨리오지~이제쫌있음 마감이라 주문하면 눈치 보이는데~"
하고 웃으며 말했는데, 친구는
"밥 먹으러 온 거 아니야. 희야 너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서 왔어."
라며 어두운(!) 분위기를 잡더라구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매니저님께 양해를 구해 30분 일찍 퇴근.
근처 커피숍에 셋이 들어가 얼굴을 마주 봤어요.
"희야, 너 지민이 임신한 거 알고 있었어?"
(역시 내 친구라 만만치 않은 돌직구)
"어? 어.. 알고 있었는데.. 지민이가 끝까지 아니라고 하더라구.."
(괜히 내가 기어들어감)
그 순간 친구는 동생의 뺨을 후려갈겼어요.
지민이는 뺨만 부여잡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있었구요.
지난 얘기인즉슨,
남자 친구와 얼떨결에 관계를 맺게 된 지민이는 피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고 해요.
그냥.. 남자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한 거라면서 눈물을 떨구더라구요.
제가 지민이한테 돌직구를 날리며 물어보기 며칠 전에 남자 친구와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졌고
제가 물어보던 날 이미 남자 친구는 잠수를 탄 후였다고 하네요 (호로 자슥아)
임신... 이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생뚱맞은 언니 친구가 임신했냐고 물어보니...
그 후로 지민이도 부쩍 불안해졌었나봐요.
날짜도 지나도 생리마저 없으니 약국에 가서 테스트 시약기를 구입.
그거 하다가 제 친구한테 된 통 딱 걸려서 모든 사실을 실토.
일은 일단 벌어진거고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도움받는 게 최선이다."
라고 친구와 지민이한테 말해줬어요.
며칠 설득 끝에 두 자매가 어머님 앞에 무릎 꿇고 사실을 고백,
어머님 반실신.. 등으로 어어졌어요.
생명은 소중하지만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때는 정해져있다.
라는 어머님의 정리로 지민이는 뱃속에 있는 아이와 헤어지게 됐어요.
그 후에 지민이는 저의 권유로 가까운 절에 가서 아이를 위한 기도... 기도.. 기도..
그리고 지민이의 강력추천으로 저는 다시 과외 언니의 자리로 복귀
(무려 2년간 장기집권했음..)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친구가 저한테 물어보더라구요.
동생 임신은 어떻게 어떻게 안거냐고..
음.. 그 친구는 재촉(!)을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한 명이었으므로
아기 울음소리와 병아리 꿈 얘기를 빠짐없이 들려줬어요.
울음소리에선 고개만 끄덕끄덕하던 친구가 병아리 얘기에선 깜놀.
"뭘 그렇게 놀라?" 하고 물으니
지민이의 별명이 '닭'이라고 하네요.
(닭대x리 네글자에서 앞글자만 남겨준 거라 했음)
닭.. 닭의 새끼는 병아리... 그래서 꿈에 병아리가 나타난 거였나?
하며 친구와 저는 잠시 신기방기 ^^;;
그 후 저는 지민이의 존경(응?)과 어머님의 총애를 받으며 과외 장기집권을 했고
과외비 받으면 아빠만 맛있는 걸 사드리는 걸로 용돈 끊은 엄마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했더랬지요^^;;
전 왜 이렇게 글만 썼다 하면 길어지는 걸까요..
역시 마무리는 어색하고 어렵네요.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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